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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이야기/정치, 경제

후진타오 성공비밀 10가지


신중국이 만든 최초의 서민 지도자
13억 중국의 리더, 70억 세계의 리더 후진타오 성공비밀 10가지

지은이 : 박근형 / 출판사 : 해피스토리 / 총 304페이지


지은이는 1974년생으로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사천대학교 사학과 중국근현대사 석사와 동 대학교 사학과 중국티베트학연구소 박사를 마친 중국관련 지식인이다.


이 책은 정주선 교육부 방면담당으로부터 빌려 본 책이다.

남자부 회합 석상에서 인물 후진타오에 대해 심층탐구 발표하였다고 하였고, 그 발표의 기본 자료가 되었던 책이라고 하였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제1부에서 중국 내부 정치, 사회적 변화와 관련하여 후진타오 일대기를 다루고,
제2부에서는 후진타오 개인의 성품을 위주로 그의 성공비결을 다룬다.


제1부의 소제목은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후진타오 / 어린 시절 / 3년 대기근과 수리학과 미남학생 / 문화대혁명과 청화대학 / 감숙성에서 보낸 나날 / 공청단 2인자 / 다시 변방으로 : 귀주성 당서기 시절 / 판첸라마와 1989년 티베트 / 6.4천안문민주화운동과 후진타오 / 황태자로 숨죽이며 보낸 10년...이다.

여기서는 중국의 현대사를 조금 맛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의 격랑과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등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중화민국이 부패로 스러져가고 모택동이 등장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웠고, 공산화 과정에서 수많은 유혈사태가 마음 졸이게 하였다.


제2부의 소제목은

공처가 /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는다 / 절망에서 희망이 보인다 / 언행을 조심하라 / 흐름을 거스르지 마라 / 탁상공론은 금물, 행동으로 말하라 / 남을 욕하지 말라 / 절대 불만을 나타내지 말라 / 언제나 겸손하라 /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다.


후진타오는 차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부자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불우하게 살았다. 재산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공산중국 광풍 속에서 매일 조심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지주계급으로 타도당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똑똑한 학생이었고, 다른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감숙성 4대 명문중 하나인 태주중학에 들어갔고, 북경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화대학도 합격했다.
후진타오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춤도 열심히 연습했고, 연애도 열심히 했다. 교칙을 어긴 행위이긴 하지만.

후진타오는 문화대혁명의 피바람 속에서 자신을 보호했다.
후진타오는 직장배치도 받지 못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았다. 자기 전공도 살리지 못하고 감숙성 공사현장에서 노동을 하며 살았지만, 최소한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감숙성에서 당 관리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대가 후진타오를 이 길로 밀어 넣었다. 후진타오는 받아들였다.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결국 인정받기 시작하고, 서서히 고위 관리로 출세하기 시작한다.

문혁이 끝나고, 등소평이 개혁개방 노선을 적극 주장하면서 후진타오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후진타오는 북경에서 왕조국을 보좌하는 일을 했고, 이곳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좌절이 찾아온다. 다행히 후진타오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귀주성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귀주에서 북경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티베트로 가야했지만, 이것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진타오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등소평이 후진타오를 주목한 것.

운이 따른 것도 사실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매일 자신을 갈고 닦으며,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행동으로 말하는 강인함을 보여줬으며, 불만을 나타내지도 남을 욕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부하들이 후진타오를 좋아했다.

후진타오는 10년 동안 황태자로 살았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자신이 언제 죽을 지 몰랐다. 후진타오는 이 10년을 견뎠다. 후진타오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갔고, 결국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지위까지 올라갔다.

매일 자신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겸손의 미학. 이것이 후진타오다.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1. 후진타오는 여자관계가 깨끗하다. 나쁘게 말하면 목석(木石)같은 사람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공인은 자기 몸도 자기 몸이 아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쁨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후진타오가 감숙성 건설위원회 사무실 비서로 일할 때 그의 아내 유영청은 건설위원회 설계처 사무원이었다. 후진타오가 설계처 부처장이 되자 일이 묘해졌다.
후진타오는 부부가 같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유영청은 감숙성 건설위원회 도시건설처로 자리를 옮겼다.

후진타오가 건설위원회 부주임이 된 후에는 유영청이 아예 건설위원회를 떠나 경제계획위원회로 이동했다. 후진타오는 언행을 조심하는 공처가다.


2. 후진타오가 귀주성 서기였을 때 한 신문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향하는 성 서기란 굳센 신념과 강력한 열의가 있어야 하고, 허명(虛名)에 들뜨지 않으며, 간부라는 폼을 잡지 않고, 군중과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민주를 지향하고, 중요한 시기에는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생활을 열애(熱愛)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귀주에 짐을 내리는 순간 내 운명이 귀주 3000만 인민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선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잘못된 보도는 나처럼 젊은 성 서기들을 중도 하차하게 만들 것이다.”

기자가 물었다. “생활을 열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우정에 대한 충성, 운동을 즐기고 문예에 취미가 있으며 생활 속 모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청년간부들은 반드시 좋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실속 있는 말을 하고 실속 있는 일을 하며 실속 있는 효과를 추구해야 한다.
기층에 헌신하고 현재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을 기본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 정력을 ‘장면’조작과 인맥 맺기에 낭비한다면 그는 틈이 벌어질 것이고, 쉽사리 ‘자만’해서 결국 파멸에 이른다.”


3.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대인관계를 발전시켜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최고의 리더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과 이야기할 줄 안다.

우리 주변에는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많은 말을 늘어놓다가 오히려 외면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기가 이룩한 업적과 빛나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늘어놓을 뿐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고 친절하고 심성 고운 사람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너무 피곤하다는 것이다.


4. 후진타오가 걸어간 길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조금씩 거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큰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일 때도 묵묵히 노동에 임했고, 대학교에서 교칙을 위반하며 연애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학업과 특별활동에 충실했다. 문혁 시절에는 혁명의 광풍에서 빠져 나왔다.

청화대학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는 묵묵히 감숙성에서 육체노동하며 살았고, 결국 이곳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처세다.


5. [군자는 중용하고, 소인은 중용을 거꾸로 한다.]

중용(中庸)의 중(中)은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평면이나 선의 ‘가운데’를 뜻한다.
둘째, 입체의 ‘속’을 뜻한다.
셋째, 동사로 ‘들어맞는다’, ‘적중시킨다’는 뜻으로도 쓴다.

입체의 ‘속’이라는 뜻이 변해서 사람 ‘속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평면이나 선의 가운데라는 뜻으로 쓰는 중(中)은 단지 한 가운데 고정지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을 유지하면서 전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점이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세상사에서 중(中)은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 남을 위하는 것과 자기를 위하는 것, 생산자와 소비자,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용자와 노동자 등 두 상반입장에서 어느 한쪽을 고집하지 않고 조화롭게 포괄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용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시중(時中)’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시중이라는 개념에서는 중용도 극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키스를 원할 때 “그것은 성인의 도리가 아니오”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때는 열렬히 키스하고 서로 몸을 비비며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중용이다.

사마천이 택한 중용은 궁형(宮刑)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중용도 극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겉보기에 극단이다. 그러나 중용이다.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며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중용이다.


6. 중국공산당은 높으신 분이 한 이론을 만들면 좋든 싫든 겉으로는 열렬히 환호해야 한다. 이것을 비웃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보통 회사를 보라. 민주주의로 운영하는가? 그렇지 않다. 높으신 분이 명령 하나 하면, 그것을 신의 계시처럼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행해야 한다. 일반 사회생활은 대부분 독재체제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대표적인 권력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서 꾸준히 승진하는 사람 중에 정말 유능한 사람이 많지 않다. 정말 유능한 사람은 참지 못하고 나가버린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와 한 1년 정도 지나면 깨닫기 시작한다. "어! 저 사람은 실력이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럴 수밖에. 회사라는 독재체제에서 높으신 분에게 미운 털 안 박히게 자기 처신 잘하며 모나지 않게 살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람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 중에 매일 자신을 갈고 닦은 사람이 기회를 얻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날이 언제 올 지 아무도 모른다. 그 때까지 흐름을 따르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날이 와도 이것이 기회라는 것조차 모른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더라도 평소 자신을 갈고 닦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 못한다.

세월은 화살과 같고, 어느덧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며, 자신이 늙은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이 “내가 옛날에...”라는 단서를 달며 자기 자랑을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생 실패한 사람이다.


7. 후진타오는 지방시찰 전에 미리 비서를 통해 지방 청년간부들에게 접대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다른 지방 간부나 군 관계자를 초청해서 연회를 준비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후진타오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광서로 시찰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연회에 참석해야 했지만 귀경한 뒤 비서를 시켜 밥값 30원을 송금했다. 이 돈은 당시 그의 월급 10분의 1 정도 되는 액수였다.


8. 후진타오는 화내지 않았다. 탁상공론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냥 행동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즉각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행동으로 말하라’(行勝於言)

후진타오는 매일 말을 조심하며 살았고,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이리저리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직접 뛰어야 한다. 직접 보고, 직접 부딪치고, 직접 느껴야 한다.

진정한 고수는 속수를 두지 않는다. 진정한 고수는 정석을 둔다. 정석을 두려고 열심히 땀 흘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속수가 한 번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모든 중용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묘수이며 정석이다.

이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머리 잘 굴린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진정한 지름길은 굽어 보인다. 말은 필요 없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남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9. 후진타오는 학교를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동무들보다 어렸다. 그런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쁘게 말하면 ‘애늙은이’였다. 그래서 무리없이 반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같은 반 동무들은 후진타오가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천재형 학생이었고,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고 증언한다. 또, 후진타오는 절대 남에게 기분 나쁜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다른 동무들과 절대 싸우는 법이 없었고, 모두 후진타오를 좋아했다.

후진타오는 ‘언제나 당과 같이 가는, 당에 불평하지 않는’인간이었다.


10. 1987년 1월 15일 중앙고문위원회 부주임 박일파가 주최한 ‘민주생활회’에서 왕조국은 함부로 호요방을 비판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절대 함부로 욕하지 않았다.

1987년 1월 호요방이 비판받고 강제로 사직했을 때, 귀주성 제1서기 후진타오가 책임지는 ‘귀주일보’는 호요방 사직에 대해 귀주성 인사들의 자세한 반응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냥 신화사 보도를 인용하여 실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 전날인 15일 후진타오가 선전부장 회의에서 ‘자산계급자유화 반대’를 말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도 같은 17일자 ‘귀주일보’ 1면에 작은 분량으로 나갔다.

후진타오는 호요방이 사직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후진타오는 호요방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1987년 귀주성 공청단 서기 겸 귀주성사회과학원 부소장으로 섭소문이 부임했다. 그는 시류에 따라 ‘자산계급자유화 반대’를 말하는 글을 잡지 ‘귀주청년’에 발표하려고 했다. 물론 호요방 비판도 같이 들어가는 글이다. 그래도 섭소문은 조심스러웠나보다. 다 쓴 뒤 후진타오를 찾아와 의향을 물었다. 그러자 후진타오는 섭소문이 예상 못한 말을 귓속에 대고 했다.

“그만두게. 풍랑이라는 것은 무턱대고 따를 것이 아니라네.”


11.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너를 위해”라며 충고한다. 이것은 자기 방어 논리다.

왜 남에게 충고하는가? 남에게 충고하면 자기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충고라는 행위를 하면 자기 기분이 풀린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기분도 풀리면, 이 충고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뜻밖에 많지 않다.

첫째, 잘 들어주어라.
둘째, 좋은 말을 하라.
셋째,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라.


12. 후진타오는 분명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후진타오의 가장 큰 장점은 위 아래 사람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후진타오가 감숙성 건설위원회 설계처 부처장으로 일할 때, 동료들은 후진타오라는 사람을 이렇게 봤다.

첫째, 예의가 바르며 사람들 의견을 존중한다.
둘째, 기억력이 탁월하며 이야기가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이 있다.
셋째, 머리가 좋고 완력도 있다. 게다가 결단력도 있다.
넷째, 동료에 대해 언제나 겸손하다. 또 각 부서와 연락을 긴밀히 해서 일처리가 자연스럽다.

강택민은 총서기가 되기 전 가장 좋은 텔레비전을 등소평에게 바친 다음 바닥에 꿇어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맞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총서기가 되고 등소평이 죽은 뒤에는 등소평 부인 탁림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했다.

하루는 후진타오의 비서 친구가 전화했다. 물론 자기 친구인 비서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사무실에 후진타오 혼자 있었다. 후진타오가 직접 받았다.

후진타오는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그 분은 지금 계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저는 진타오라고 합니다.”

“누구라고요?”

“저는 진타오입니다.”

“잘 들리지 않는데요, 조금 크게 말하면 안되겠습니까?”

“저는 진타오입니다.”

목청이 커졌지만 어투는 변화가 없었다. 그 사람은 그제서야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알고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재능이 칼이라면 겸손은 칼집이다. 재능만 있는 사람은 현재완료형에 머문다. 겸손을 겸비한 사람은 미래진행형으로 발전한다. 자신을 한 발 더 나아가도록 해 주는 힘이 겸손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신중국이 만든 최초의 서민 지도자 후진타오..
중국이 더이상 아시아의 잠룡이 아닌 상황에서 13억 중국의 신 지도자 후진타오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심있는 사람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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