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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이야기/인문

'이케다 다이사쿠 명언 100선'을 읽고..

어떤 생물이든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않으면 병들게 되어있다.
If any organism fails to fulfill its potentialities, it becomes sick.(William James)


이케다 다시사쿠 명언 100선을 읽었다.

“풍요로운 삶의 지표”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한가롭게 음미하는 여느 잠언집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투쟁적이다. 잠언의 한편 한편을 읽어가노라면, 어느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라고.

책은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나왔다. 이케다 선생님의 저서가 화광출판사가 아닌 국내 유수의 신문사 출판국을 통해 나온 게 낯설지 않다는 것이 왠지 마음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 책은 이케다 선생님의 각종 강연 및 스피치에서 발췌한 잠언을 정리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으로,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테마가 있다.


<제1장 희망의 내일로>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행복 - 나만의 행복도 없고 타인만의 불행도 없다. 남을 행복하게 해준 만큼 나도 행복해진다.

- 어떠한 지성(知性)을 지녔다 해도 정열을 잃어버리면 ‘산송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열은 행복의 요건이다. 인생의 행・불행은 대부분 매사에 정열을 갖고 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결정된다.


사회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시끄럽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타인의 행복을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안락을 구축한다는 풍조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그들의 피폐한 삶을 뉴스로 전해 들으며 “나는 과연 행복한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의 행복은 “함께 행복하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케다 선생님은 <제6장 욕망의 극복>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현대는 욕망을 달성하는 일이 바로 인생의 목적인 듯 착각하고 있다.

-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생명과 자연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것을 ‘시장에 내놓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로 환산하는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이 지구상에 점점 더 만연하고 있다. 우리는 때를 놓치기 전에 인간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작년 말, 창원의 한 다리 위에서 바다를 향해 아들을 떠밀고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진 어느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야간 대리운전을 하며 간신히 생활을 떠받쳐 왔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좌절감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또, 난간에 매달려 두려움에 떨던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가 뛰어내리기 전 그에게 함께 힘내서 살아가자고 말할 수는 없었는지..

이케다 선생님은 더 이상 때를 놓치기 전에 인간성의 복권(復權)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주변에서 비참을 없애고 싶다. 모두가 기쁨에 넘쳐 각자 자신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삶’을 구축하고 싶다.


그런데, 행복은 어디까지나 도전하고 한걸음 한걸음 극복해가는 ‘투쟁하는 나’의 생명 속에 있다고 이케다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하루하루 그저 숨쉬는 것에 불과한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런 삶의 충만감도 갖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하루, 또 하루... 나는 용기를 내어야겠다. 행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이케다 선생님은 <제4장 생명과 철학>의 장에서 불법(佛法)의 지견(知見)과 인간혁명(人間革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佛法)의 지견(知見)과 인간혁명(人間革命) - 한 인간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을 전환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도 가능케 한다.

- 자기중심적인 삶의 자세에서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인간혁명’이다.

- 불교(佛敎)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고뇌하는 사람 앞에 앉아서 명상에 잠기는 것보다 ‘발고여락(拔苦與樂)’을 위해 일어서는, 다시 말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교의 정수다.

- 불교에서 설하는 부처는 ‘성스러운 경지(境地)’에 안주한 성자(聖者)인 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항상 봉사하는 데 게으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경전(經典)에 씌어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투쟁하는 사람이 부처다. 부처는 투쟁으로 연마된 인격을 갖춘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사회에 인간성의 파동을 펼쳐나가기 위하여 불법은 있다.

현대는 ‘무관심’의 시대다, 마음이 죽은 시대다. 타인의 괴로움을 보고도 못 본 체함으로써 자기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무엇인가를 마비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대다. 무력감이나 무관심이야말로 바로 인간과 시대를 뒤덮는 근본적인 어둠이다. 그 쇠약해진 생명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절대적으로 ‘용기’가 필요하다.


선생님은 ‘용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용기 - 인생의 승리는 모두 용기에서 시작된다. 한 걸음 내딛는 용기, 좌절하지 않는 용기, 자신에게 지지 않는 용기... 용기만이 벽을 부술 수 있다.


신심(信心)의 이명(異名)은 ‘용기’라고. 그렇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직장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심지어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마저도 용기가 필요하다. 신심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확신(確信)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참으로 흔들리기 쉬운 존재다. 사회에서, 생활에서 흔들리지 않고 용감하게 승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좋은 선배, 좋은 친구, 선지식, 그리고 스승..


이케다 선생님은 <제2장 인생과 사회>에서 ‘사제(師弟)’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제(師弟) - 스승이라는 원점(原點)을 지닌 사람은 강하다.

원점을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점을 잊지 않으면 나아가야 할 신념의 궤도를 잃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사제란 같은 이상(理想)을 공유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투쟁하는 둘도 없는 최고의 동지라고 할 수 있다. 사제는 이른바 도제(徒弟)나 주종(主從)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를 일방적인 상하관계라고 한다면 사제는 평등한 인간주의의 결합이다. 거기에는 제자의 자발적인 행동이 있고, 스승의 자애가 담겨 있다.


이케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제’는 결코 상명하복의 주종관계가 아니다. 사제는 평등한 인간 대 인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스승과 제자가 서로 촉발이 있다. 제자는 스승을 마음에 품고 인생의 대도를 표류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며, 그런 제자를 스승은 마음속으로 가만히 응원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나는 이케다 선생님을 스승으로 정하였다.

이케다 선생님은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노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나는 스스로 이케다 선생님을 나의 스승으로 정하였다. 나는 내 인생 도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음 속으로 가만히 스승과 상의하고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며 힘껏 살아나가려 한다.


소감문을 마무리해야겠다.

이 책은 불법철학과 사상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등 인간 사회의 전반에 걸쳐 지남하고 있다.
이 책은 지극히 도전적이고 열정적이며 실천적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 깊이 침잠한 인간 본연의 선성(善性)을 촉발시킨다.
우리는 조용히 의미를 되새기고 생각에 잠겨야 하지만, 그 후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나와 나의 이웃을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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